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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사에서 가장 잔인한 삶
재즈사를 통틀어서, 아니 재즈를 넘어 음악가의 영역을 넘어 그 누구의 인생을 들춰봐도 이토록 잔인한 인생을 찾기는 힘들 것 같다. 44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을 때 사람들은 그녀가 비로소 평화를 찾았다고 말 할 정도로 암담했다. 16살인 아버지와 13살인 어머니 사이에서 정식 결혼도 없이 태어난 빌리 홀리데이는 어머니의 성(Eleanor)을 따랐다. 당시 대부분의 흑인여성들이 그러 하듯이 백인 가정의 하녀로 일하고 있던 빌리 홀리데이의 어머니는 빌리를 잉태한 사실이 들통나 거리로 쫓겨나게 되었고, 빌리의 아버지는 그 와중에 유랑극단을 따라 떠나버리고 만다. 빌리를 출산하긴 했지만 양육할 능력이 없던 빌리의 어머니는 빌리를 외가에 맡기고 일자리를 찾아 뉴욕으로 떠나버리고, 어머니의 사촌 아이다의 집에 살면서 온갖 구박과 학대에 시달리며 생활 한다.
10살이 되던 해 빌리는 40세 가량의 백인 남자 딕크의 집에서 허드렛 일을 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큰 상처를 입은 빌리는 이 사건을 경찰에 신고하지만 경찰은 오히려 빌리를 불량소녀로 몰아 감화원에 보내고 2년 동안의 수감생활을 한다. 2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나온 빌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 다른 흑인남자의 성폭행 이었고, 결국 빌리의 어머니는 빌리를 이끌고 뉴욕으로 간다. 뉴욕에서의 생활도 별 다를 것 없었다.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던 그녀는 결국 사창가에서 몸을 팔게 되었고, 이런 생활이 오히려 그녀에겐 풍족하게 느껴졌었다. 하지만 사창가 생활도 오래가지 못했다. 어떤 흑인의 성행위를 거부하다가 밀고 당해 결국은 또 다시 경찰로 넘겨졌고 빌리는 15살의 나이에 두 번째 수감생활을 하게 된다. 출소 후 사창가 생활을 정리하고 하녀 생활을 시작했지만, 미국 전역을 휩쓴 경제 대공황으로 그마저도 일거리를 찾기 쉽지 않았다. 추운 어느 겨울 밤. 밀린 방세를 마련하지 못하면 다음날 쫓겨난다는 절박감을 안고 거리에 나선 빌리 홀리데이는 그저 발길 닿는 데로 걷 고 또 걷던 중 그녀의 발길은 포즈와 제리츠라는 나이트 클럽에 멈췄다. 당장의 생활비와 방세가 급했던 빌리는 지배인을 만나 사정사정하며 자신을 무용수라 속이고 일자리를 얻어 보려 했지만, 즉석에서 오디션을 통과해야 한다는 제안에 이 거짓말도 들통나고 만다. 노발대발한 지배인은 빌리를 내쫓으려 했다. 그때 그녀를 불쌍히 여긴 피아노 연주자가 “노래는 어때?”라고 물어보았고 절박한 심정이었던 빌리는 홀 안이 쩌렁쩌렁하게 울릴 정도로 큰 소리로 “노래라면 자신 있어요”라고 대답한다. 무대에서 노래를 할 기회를 얻게 된 빌리, 그녀의 노래는 시끄러운 홀 안에 울려 퍼졌고 사람들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조용해졌다. 훗날 그녀는 그 때를 이렇게 회상 했다
"나는 뒤늦게 그 같은 분위기를 감지했어요. 모두가 조용히 내 노래만을 듣고 있었죠. 만약 누가 핀이라도 하나 떨어뜨렸다면 그것은 마치 폭탄이 터지는 소리 같았을 거에요”
놀랍게도 홀 안의 모든 사람들이 빌리의 노래에 감동하고 있었다. 노래가 끝났는데도 꿈같은 정적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어느 자리에서는 술잔을 옆에 놓고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날 밤 피아니스트와 반으로 나눈 그녀의 팁은 57달러나 되었고, 그날부터 그녀는 주급 18달러짜리의 가수 가 되었다. 본명 엘리노어 페이건을 대신 할 예명이 필요 하게 된 그녀, 평소 좋아하던 배우 빌리 도브와, 아버지의 성 홀리데이를 따와 빌리 홀리데이라 불리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