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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대 중엽 뉴욕, 알토 색소폰 하나 달랑 들고 나타난 못생긴 재즈 연주자에게 사람들은 그다지 많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But…그리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아 이 연주자는 “제 2의 찰리파커”, “뉴 버드(버드는 찰리파커의 별명)” 라는 호칭을 얻으며 재즈계의 중심에 서게 되는데….
여름 내내 들었던 스트레이트 한 음악이 서서히 질릴 즈음,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피부를 스쳐가고, 괜히 가보지도 않은 쓸쓸한 뉴욕 클럽가의 정취를 느끼고 싶을 때 끌리는 재즈! 그리고 재즈의 입문서로써 가장 바람직한, 아니 가장 완벽한 아티스트 캐논볼 애덜리(Cannonball Adderley). 갑짜기 툭 튀어나와 한 시대를 이끌어나가는 대표 재즈뮤지션으로 발돋움한 그의 이야기와 음악이 이번 리뷰의 주제이다.
본론에 앞서, 캐논볼이란 이름은 별명이다. 이름만 듣고는 그가 마치 대포알처럼 엄청난 음량으로 미친듯이 연주해서 그렇겠거니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그의 연주는 상상과는 정 반대의 특성을 지닌 연주자였고, 넉넉한 성격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전면에 나서는 것 보단 받쳐주는데에 만족을 했던 사람이었다. 캐논볼이라 불리게 된 유래는 큰 체격과 뭐든 눈에 보이는 데로 개걸스럽게 주어먹는 식성 때문에 붙여진 캐니벌(Cannibal식인종)이 와전 되어 붙은 별명이다.
소울재즈의 거장 - 재즈 자이언트
1928년 9월 15일 플로리다 주 탐파에서 태어난 캐논볼 애덜리 (본명: Julian Edwin Adderley). 3년후 동생 넷(4명이 아니라 이름입니 다.)이 태어나 날개를 받쳐주는 바람 같은 음악적 동반자가 되기도 하는데, 연주자로써의 엄청난 명성을 얻기까지 그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뛰어난 스승을 만난다던가…천재적인 어린 시절이 있었다던가 하는 일 없이 말이다. 1942년부터 알토 색소폰을 만진 그는 지역의 로컬 밴드들과 잼(Jam)을 하며 지냈다. 워낙 시골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란 탓에 명인이나 대가를 만나 본적 없이 독학으로 알토 색소폰을 공부하고 필드(?)에 나갔던 것 이다. 이 와중에도 생계를 이어 가야 했으므로 고등학교의 밴드부 교사가 된 것은 1948년. 그 2년 후 군에 입대하고 전역 후에도 마땅히 할 일이 없었기에 다시 그 고등학교에서 밴드부 교사로 재직하게 된다.
1955년 재즈의 역사를 바꾸게 될 사건이 일어난다. 캐논볼 애덜리와 동생 넷 애덜리가 재즈에 목숨을 걸어보고자 무작정 뉴욕으로 올라 온 것이다. 처음부터 인생역전의 수직 상승 그래프를 그린 것은 아니었다. “뉴 버드”라 불리며 각광 받긴 했지만, 마일즈 데이비스의 눈에 들기 전까지 2년 동안은 그저 그렇게 지내게 된다. 1957년 10월, 캐논볼 애덜리의 연주를 눈 여겨 보던 마일즈 데이비스는 퀸텟(5중주)을 섹스텟(6중주)로 바꾸면서까지 캐논볼 애덜리를 영입하게 되었다. 그는 마일즈 데이비스의 사이드맨으로써 많은 명성을 얻기도 하고, 연주법과 음악 비즈니스에 대해서도 많은 가르침을 받으며 마일즈 데이비스의 명작 Kind Of Blue에 참여하기도 한다. 이렇게 마일즈 데이비스의 사이드맨으로 활동하던 중, 캐논볼 애덜리는 마일즈가 아닌 자신을 리더로 하는 앨범을 발표하게 되고, 그것이 지금까지도 재즈 역사상 최고의 명반으로 평가 받고 있는 Somethin’ Else이다.
그는 지나치게 진지한 자세로 연주하던 다른 재즈 연주자들과는 다르게 무대 매너가 좋았고, 관중들과 함께 호흡할 줄 알았고, 교감이 원활한 흥겨운 사운드를 표현했다. 이러한 그의 음악스타일은 넉넉한 몸집에서 나오는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맞물려 대중적,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는 요인이 되었다.
경쾌한 소울재즈를 통하여 대중적 인지도의 절정을 달리던 캐논볼 애덜리는 친동생인 넷 애덜리와 함께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며 순회 연주를 하던 중, 1975년 47세의 나이에 뇌출혈로 사망한다.
캐논볼 애덜리는 동시대 혹은 뒤이어 나타나는 뮤지션들에게 새로운 비젼을 제시할 만한 전위적인 예술가는 아니었다. 캐논볼 이란 별명과 식성 답게 이것저것을 배워 자기의 것으로 소화해 내는 형태의 뮤지션 이었다. "제 2의 찰리파커"라는 수식어를 달고 살았음에도 이런 수식어 뒤에 따라붙는 창의성에 대한 논란도 없었고, 여러 음을 쉼 없이 남발하는 비밥스타일 연주자였음에도 마일즈 데이비스에게서 침묵을 사용하는법과 음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이는 법을 배우고 적절하게 활용했다. 동생 넷 애덜리와 퀸텟을 만들어 활동하던 중에도 수많은 게스트를 초청하며 그들의 스타일을 마구 섭취하고 소화 해냈다. 음악적 활동과 함께 재즈의 대중화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여러 대학을 돌며 재즈의 음악적인 면과 사회학적인 면을 강의하기도 했다.
이런 놀라운 만한 흡수력과 대중을 외면하지 않는 자세, 여기에 거리낌 없이 불어 재끼는(?) 놀라운 테크닉이 더해지면서 듣는 이를 다그치지 않는, 다가가기 쉽고 친근한 캐논볼 애덜리라는 거장이 탄생한 것이다.
불멸의 재즈 명반 Somethin’ Else
콜롬비아 레코드와 전속계약 상태였던 마일즈 데이비스, 블루노트를 통해 음반을 발매하고 싶어 마땅한 방법을 찾던 중 선택한 것이 바로 캐논볼 애덜리를 꼬셔(?) 그의 이름으로 음반을 내는 것이었다. 트럼페터 마일즈 데이비스, 알토 색소포니스트 캐논볼 애덜리, 피아니스트 행크 존스, 베이시스트 샘 존스, 드러머 아트 블래키 등이 참여해 명반이 되는 것은 필연 이었을 것 같은 이 앨범! 아니나 다를까, 재즈 역사상 몇 손가락에 꼽히는 명반으로 남게 된다.
블루노트 설립 70주년을 기념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압도적인 지지로 1위를 차지하고, 일본에서는 20년 동안 재즈 명예의 전당 1위로 대우 할 정도라 하니, 타 장르에서도 이 정도로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앨범은 없지 않을까….
캐논볼 애덜리 베스트 앨범에서 뽑은 Somethin’ Else 수록곡
Autumn Leaves
Somethin’ Else에 수록 된 Autumn Leaves는 이브 몽땅의 샹송을 재즈로 해석한 최초의 버전이자, 가장 아름다운 Autumn Leaves로 꼽힌다. 이후 재즈 스탠다드의 대명사가 되었고 공식 리메이크 기록이 무려 2800여회에 이르지만 그 누구도 마일즈와 캐논볼의 환상적인 조화를 앞서진 못했다.
11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지만, 지루할 틈 없이 잘 짜여진 곡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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